[청년 아카데미 27] 프레임혁명의 조건-문제해결의 관문, 다섯 가지 난제

서유럽과 북미 지역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이 1970년대 장기불황 늪에 빠져든 결정적 요인은 성장 동력 소진이었다

충북청년신문 | 기사입력 2020/10/25 [18:33]

[청년 아카데미 27] 프레임혁명의 조건-문제해결의 관문, 다섯 가지 난제

서유럽과 북미 지역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이 1970년대 장기불황 늪에 빠져든 결정적 요인은 성장 동력 소진이었다

충북청년신문 | 입력 : 2020/10/25 [18:33]

[청년 아카데미 27] 프레임혁명의 조건-문제해결의 관문, 다섯 가지 난제

 

서유럽과 북미 지역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이 1970년대 장기불황 늪에 빠져든 결정적 요인은 성장 동력 소진이었다

      

프레임 혁명의 실체에 접근하려면 기존 프레임 안에서 해답을 찾기 어려운 부분을 보다 엄밀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냉혹한 판정 기준이 있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우리 앞에 던져진 다섯 가지 난제이다.

 

다섯 가지 난제는 난이도가 너무 높아 많은 사람들이 풀기를 포기하고 서랍 속에 밀어 넣은 숙제들이다. 이들 난제는 진보 이론 정책가들이 의존하고 있는 문제 해결 프레임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판정하는 기준이다. 기존 과학지식이 수명이 다했는지 여부를 가리는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하다.

 

기존의 문제 해결 프레임만이 아니라 새로운 프레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프레임의 구성 요소이거나 한 유형일 수 있는 경제 패러다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 중심 경제를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제기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충분한 요건을 갖추려면 다섯 가지 난제 모두에 해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레토릭 수준을 크게 벗어날 수 없다.

 

기존 프레임에 의존하고 싶어 하는 진보 이론 정책가들 사이에서는 이 난제들을 애써 무시하거나 가볍게 다룰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이는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다. 진보 전문가들이 내세운 정책들이 실제로 적용되었을 때 다섯 가지 난제를 해결하지 못해 크게 흔들리거나 아예 무너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보수는 현실을 수긍하고 그에 순응할 방법을 찾는다, 진보는 순응이 아닌 전향적 극복을 지향한다. 한층 고차원적인 해법을 찾아야 하는 운명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다섯 가지 난제가 어떻게 진보 이론 정책가들이 의존해온 기존의 프레임들에 충격을 주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자.

 

 

첫째, 성장 동력 확보

 

굳이 카를 마르크스 Karl Marx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불길한 예언을 쏟아냈던가? 한눈에 보더라도 자본주의는 숱한 문제들을 안고 있고 걸핏하면 위기에 직면해 휘청거리기 일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아직까지도 망하지 않은 채 잘도 버티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자본주의가 살아남은 이유

 

자본주의가 근대 이전 사회와 구별되는 세 가지가 있다. 이는 곧 자본주의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기초이기도 하다.

 

첫째, 성장에 기반을 둔 부의 축적을 추구했다.

 

근대 이전을 지배한 농업은 1인당 생산 증가폭이 거의 제로 상태에 가까웠다. 총량이 증가하더라도 인구 팽창과 경작지 확대에 따른 결과였다. 성장 제로는 곧 추가적인 부의 창출이 거의 없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조건에서 부의 축적은 오직 다른 사람 몫을 강탈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었다. 많은 문화권에서 부의 축적을 죄악으로 간주했던 이유였다. 예수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이야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 점에서 확연히 달랐다. 자본주의의 주된 기반인 공업은 기술 혁신을 통한 생산성의 지속적 상승을 추동했다. 그럼으로써 추가적인 부의 창출 즉 성장을 기반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파이를 키워 자기 몫을 늘렸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소수 부자만이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의 소득 또한 늘어날 수 있었다. 유발 하라리 Yuval Noah Harari사피엔스 Sapiens에서 지적했다시피 성장은 근대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가장 중요한 차이가 되었다.

 

둘째, 소득의 많은 부분을 재투자했다.

 

근대 이전 시기 부자들은 소득 전부를 사치와 향락에 낭비했다. 그들에게는 재투자라는 개념은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재투자 대상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이 점에서 확연히 달랐다. 자본은 재투자를 통한 자기증식을 본래적 속성으로 삼는다. 재투자 없이 모두 낭비하다가는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자본 재투자는 확대재생산 증폭제가 되었고 자본증식은 경제성장의 엔진 구실을 했다.

 

셋째, 생산성 경쟁을 통해 부의 민주화를 실현했다.

 

근대 이전 부자들은 각종 배타적 특권을 누렸다. 이동 수단으로서 가마나 마차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평민들에게는 가마나 마차를 이용할 권리가 허락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이 점에서 확연히 달랐다. 자본주의는 특권의 성을 허물고 어떤 제품이든 누구나 접근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보다 낮은 가격으로 좋은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경쟁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부를 민주화시킨다. 오늘날 가마나 마차 역할을 하는 승용차는 누구나 보유 가능한 이동 수단이 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작용하면서 자본주의 발전이 이루어졌고 사회적 생산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노동자 계급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얻은 성과이기도 했지만 성장 그 자체의 결과로서 대중의 물질적 생활환경도 함께 개선되었다. 지구 전체로 보았을 때는 자본주의가 발전해서가 아니라 발전하지 못해서 고통 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

 

보수 세계는 자본주의의 본능에 매우 충실한 방향에서 전략을 구사해 왔다. 경제성장에 높은 가치를 부여했고 성장이야말로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보았다. 성장을 위해 재벌 체제도 용인했고 분배도 최대한 억제했다. 그에 대한 반발로 성장 문제는 종종 치열한 시비꺼리가 되었다. 진보 세계에는 성장을 강조하는 것에 대한 뿌리 깊은 정서적 거부감이 자리 잡았다.

      

생태계 보전이 중요 의제로 부상하면서 성장을 절대시하는 관점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성장지상주의가 생태계 파괴를 야기하면서 종국에는 인류 생존마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일부 급진적 입장에서는 성장을 추구하는 것 자체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성장을 멈추고 평등 분배소비 억제생태친화적 삶을 추구하는 것만이 인류가 자신을 구원할 유일한 길이라고 본다. 일각에서는 성장 없는 경제 모델 연구에 착수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성장을 절대시하는 성장지상주의가 답일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성장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가능할까? 과연 가까운 장래에 성장 제로를 전제로 평등 분배를 실현하며 생태 친화적 삶을 살 수 있을까?

 

성장 제로 상태에서 부의 평등 분배를 추구하면 추가적인 부의 축적은 불가능해진다. 부의 축적이 불가능한 조건에서는 생산성 향상 동기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경쟁력 상실로 인한 국민경제 붕괴로 나타날 것이다. 글로벌 경쟁 체제에서 불가피한 일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가 똑같이 보조를 맞춘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가까운 장래에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성장의 문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 바위를 떠올리게 한다.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시시포스는 벌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 위까지 밀어 올려야만 했다. 바위는 산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시시포스는 그 바위를 다시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야만 했다. 시시포스 신화는 사람들에게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의 굴레가 존재함을 암시한다. 성장도 그 중 하나였던 것이다. 성장은 싫든 좋든 끌어안고 가야 하는 숙명의 굴레와도 같았다.

 

물론 성장에는 많은 전제들이 따라붙어 왔다. 적정 성장률이 어느 정도인지도 면밀한 검토 대상이 되고 있다. 경제가 성숙한 단계로 갈수록 적정 성장률은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전체 파이가 커진 만큼 상대적으로 낮은 성장률로도 부의 축적을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장의 내용 또한 관리 대상이 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물질 위주의 양적 성장에서 비물질 중심의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를 통해 성장과 생태주의 사이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성장이 경제 활동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보다 분명하게 확인하기를 원한다면 지나온 역사를 되돌아보면 된다.

 

 

황금기가 남긴 메시지

 

자본주의 황금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자본주의 황금기란 대략 1950년대에서 1960년대 말까지 서유럽과 북미 지역, 일본 등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을 중심으로 장기간 호황이 이어졌던 시기를 가리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가 설득력을 상실하면서 새롭게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서유럽은 2차 세계대전에 이후 사회주의권으로 편입된 동유럽을 제외한 자본주의 진영 유럽 세계를 가리킨다. 통상 남유럽, 북유럽으로 분류하는 나라들 역시 서유럽에 포함된다.

 

자본주의 황금기 동안 전 세계 공산품 생산량은 4배로, 공산품 세계 교역량은 10배로 확대되었다. 이는 선진 자본주의 번영에 따른 것이었다. 전 세계 생산고 4분의 3과 공산품 수출액 80%를 미국, 서유럽, 일본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차지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서독과 일본의 성장률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서독의 경우 1950년대에서 1960년까지 연평균 8.6% 성장했고, 국민 총생산은 10년 새 두 배로 성장했다. 번영을 구가하면서 실업률은 완전고용에 가까울 정도로 낮아졌다. 1960년대 서유럽 평균 실업률은 1.5%였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자본주의 황금기가 도래한 원인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성장 동력이 왕성하게 살아 있었던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성장 동력으로 꼽는 것은 신산업 출현, 생산성 향상, 교역 확대이다. 자본주의 황금기에는 이 세 가지 모두가 고르게 작동했다.

 

2차 세계대전과 함께 군수 분야에서 첨단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들 기술이 민간으로 이전되면서 전기전자, 화학, 기계 등의 분야에서 신산업이 연속적으로 창출되었다. 신산업 창출은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면서 고스란히 선장 동력으로 작용했다. 테일러포드 시스템 기반 대량생산 체제로 대표되는 2차 산업혁명은 노동생산성을 지속적으로 상승시켰다. 노동생산성 상승은 산업 경쟁력을 강화시키면서 성장을 크게 촉진했다. 2차 세계대전과 함께 GATT(무역과 관세에 관한 일반 협정) 체제가 수립되고 달러가 기축 통화로 기능함에 따라 세계 시장이 안정화 되면서 교역이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미국의 프레더릭 테일러Frederick W. Taylor가 창안한 테일러 시스템은 작업 동작을 시간 단위로 정밀 분석한 것을 토대로 노동과정을 기계에 최대한 일치시켰다. 헨리 포드 Henry Ford가 창안한 포드 시스템은 테일러 시스템을 더욱 발전시켜 기계와 부품 등 생산 요소를 표준화 · 규격화한 뒤 노동을 극도로 세분화하고 이를 컨베이어라인으로 일괄 연결시켰다. 테일러 ­ 포드시스템은 한때 높은 생산성으로 인류가 고안해낸 최고의 작업시스템이란 칭송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노동자가 치러야 할 대가는 매우 혹독한 것이었다. 노동자는 철저하게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략했다. 기계가 주인이고 노동자는 그 하인이 되어야 했다.

 

 

자본주의 황금기 동안 원활한 성장의 지속에 기여한 것으로 케인스주의 처방을 들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세계에 던져진 가장 큰 숙제는 이전 시기 모든 위기의 출발점인 대공항의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그에 대해 가장 뚜렷한 해답을 준 인물이 바로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였다.

 

이전까지는 공급 중심의 경제학이 지배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공급이 시장을 창출한다는 이론이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케인스는 출발을 달리했다. 케인스는 유효수요 부족이 문제의 발단이며 이를 해결하는 것이 대공황 예방 지름길이라고 여겼다. 제시된 방법은 불황기에 국가가 공공지출을 늘리는 등의 방식으로 노동자의 임금 소득을 증대시키는 것이었다. 필요한 재원은 적자재정을 통해 조달하고 호황기에 흑자재정을 통해 보충하면 된다고 보았다.

 

케인스가 제시한 처방은 확실한 성공을 거두었다. 선진 자본주의는 케인스주의 처방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갔다. 주기적으로 불황기가 닥쳐왔지만 그 폭은 최소화되었으며 이내 호황기로 전환했다.

 

자본주의 황금기 동안 함께 번영을 누린 것은 복지국가였다. 이는 복지국가가 성장 동력이 왕성하게 살아 있는 조건에서 정상 작동하는 시스템임을 암시한다. 이 점에 대해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한 정치 집단은 좌파 정당인 스웨덴 사회민주당이었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성장 동력 관리가 모든 성공의 선결 조건임을 간파했다. 그들은 분배에만 치중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순진한 사고를 하지 않았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성장 동력 관리를 위해 세 가지 전략을 구사했다. 협력적 노사관계 확립을 통해 산업 평화를 확립했다. 파업 발생은 최소화되었다.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재편을 추진했다. 철저한 개방 경제를 통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했다.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은 가차 없이 퇴출시켰다. 모두가 한국에서는 보수 세력의 전유물처럼 여기는 의제들이었다.

 

1960년대 후반 대부분의 관측자들은 번영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유엔 보고서도 성장 추세가 1970년대 초중반에도 계속될 것임을 의심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1970년대에 접어들자 상황이 급반전했다. 장기불황이 서유럽과 북미 지역을 엄습한 것이다. 장기불황임에도 물가는 계속 올랐다.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stagflation’이 발생하면서 기업주들은 장기불황으로 이윤율이 떨어진다고 아우성쳤고, 노동자들은 물가 상승으로 실질 소득이 늘지 않는다고 아우성쳤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1970년대 이후 장기불황의 원인에 대해 의견이 여전히 분분하다. 일부 논자들은 1973년 유가 폭동으로 이어진 석유위기를 꼽았다. 석유위기가 대폭적인 비용 상승을 초래하면서 악영향을 미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결정적 요인은 아니었다. 석유위기가 없었더라도 장기불황은 도래했다. 단적으로 장기불황은 석유위기 이전에 시작되었다. 석유 가격이 크게 하락한 1980년대 초에 이르러서도 장기불황은 계속되었다. 일본도 똑같이 경기 침체를 경험했지만 빠르게 빠져나왔다.

 

서유럽과 북미 지역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이 1970년대 장기불황 늪에 빠져든 결정적 요인은 성장 동력 소진이었다.

 

먼저 신산업 출현이 거의 멈추다시피 했다. 1970년대에 새로 출현한 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3차 산업혁명의 주축인 IT산업 등이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였다. 노동생산성 상승도 뚜렷하게 둔화되었다. 전문가들은 주요 원인으로 생활환경의 변화를 꼽고 있다. 장기간 번영으로 유복한 삶을 누린 젊은 층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테일러포드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동생산성 둔화는 곧바로 교역에서 불리한 결과를 초래했다. 우세한 노동생산성을 바탕으로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유럽과 북미 지역 시장을 파죽지세로 잠식했던 것이다.

성장 동력이 소진되자 사람 몸이 영양 부족에 시달릴 때처럼 경제가 기운을 잃고 비실거렸다. 일본이 비교적 빠르게 불황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지속적인 노동생산성 상승을 통해 성장 동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성장 동력 소진으로 장기 불황 늪에 빠져들자 케인스주의 처방은 완전히 무력화 되었다. 일각에서 잘못 이해하고 있다시피 케인스주의는 결코 성장 전략이 아니었다. 성장 동력이 왕성하게 살아있는 조건에서 성장을 원활하게 지속시키는 부속 장치로 기능했을 뿐이다. 성장 동력이 소진되자 그 기능도 함께 사라졌다. 경기 순환을 조절하는 거시경제 관리 정책 기능도 불황기가 짧게

끝날 때만 작동할 수 있었다. 불황이 장기화되는 조건에서 적자재정을 길게 이어가다 보면 재정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당 나라 정부들은 그동안 믿고 의지했던 수단을 모두 동원해 장기불황에서 탈출하려고 몸부림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복지 정책도 문제 해결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도리어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기존 복지 체계 유지마저 힘들어졌다. 무엇보다 늘어나는 실업구제비용이 정부 재정을 위협했다. 증세를 통한 문제 해결도 쉽지 않았다. 불황 시기에 증세가 이루어지려면 개인은 소비 지출을, 기업은 투자를 줄여야 하는데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설령 증세가 이루어진다 해도 기업 투자 능력 약화로 실업자가 더 늘어가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기 쉬었다.

 

전후 선진 자본주의 역사는 성장 동력 확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성장 동력이 소진되면 모든 것이 꼬여 버렸다. 여러모로 성장 동력 확보는 모든 것의 전제가 되는 경제 제일의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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