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아카데미 25] 시민 리더십의 화려한 부활, 촛불시민혁명

10대들은 촛불시위 초기 국면을 주도했다. 10대들은 촛불시위 초기 국면을 주도했다. 촛불시위 초기 참가자의 50~60%는 이들 10대들로 채워졌다

충북청년신문 | 기사입력 2020/10/17 [21:05]

[청년 아카데미 25] 시민 리더십의 화려한 부활, 촛불시민혁명

10대들은 촛불시위 초기 국면을 주도했다. 10대들은 촛불시위 초기 국면을 주도했다. 촛불시위 초기 참가자의 50~60%는 이들 10대들로 채워졌다

충북청년신문 | 입력 : 2020/10/17 [21:05]

 

 

[청년 아카데미 25] 시민 리더십의 화려한 부활촛불시민혁명

 

 

 

10대들은 촛불시위 초기 국면을 주도했다.

촛불시위 초기 참가자의 50~60%는 이들 10대들로 채워졌다

 

이들은 대부분 기존의 시민사회운동 단체들과는 거의 무관한 존재였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그때까지 흐름을 주도했던 시민 주체들은 기득권 세력에 한층 가까워졌다. 반면 새로운 시민 주체의 출현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민주의는 힘을 잃었고 대신 엘리트주의가 사회 전반을 지배했다. 시민주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외환위기 이후 10년은 퇴행의 시대였다.

 

긴 터널을 지나 2008년에 이르러 새로운 시민 주체의 출현을 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명박 정부의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으로 촉발된 촛불시위다. 2008년의 촛불시위는 주최 측 추산 연인원 300만 명 정도가 참여한 가운데 52일부터 712일까지 진행 된 평소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시위였다.

 

새로운 시민 주체의 출현

 

2008년 촛불시위 도화선 역할을 한 사람들은 10대 학생들이었다. 10대들은 이명박 정부가 영어몰입 교육 도입, 특목고 확대, 0교시 수업 허용 등을 추진하면서 잔뜩 이 돋아 있던 중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방침을 정하자 10대들은 격렬한 분노를 느꼈다. 10대들은 수입 괴고기가 학교 급식을 통해 자신들에게 공급될 것이 분명하다고 보았다.

 

57만 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던 미친 소를 몰아내는 10대연합’. ‘안티이명박까페’ ‘미친소닷넷등 온라인 단체들은 촛불집회를 적극 추진했다. 10대들이 주축을 이룬 이들 온라인 단체들은 촛불집회를 제안하고 실무 준비까지 담당했다.

 

5210대 여학생들이 서울 청계천 광장에 모여 처음 촛불을 들었다. “미친 소, 너나 먹어라는 여학생들의 외침은 세상을 뒤흔드는 출발점이 되었다. 세상은 여학생들에게 촛불소녀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10대들은 촛불시위 초기 국면을 주도했다. 촛불시위 초기 참가자의 50~60%는 이들 10대들로 채워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20대와 30대 청년들이 가세했다. 40대 이상 참여자 수도 늘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10~30대 청년들이 일관되게 주도했다. 이들은 대부분 기존의 시민사회운동 단체들과는 거의 무관한 존재였다.

 

청년들은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매우 당혹스러울 정도로 전혀 새로운 집회 문화를 선보였다. 그럼으로써 그들 자신이 전혀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새로운 시민 주체임을 강렬하게 드러냈다.

 

2008년 촛불시위를 주도적으로 이끈 청년들은 그 어떤 조직에도 구속되는 것을 꺼렸다. 심지어 누군가 자신을 가르치려 들거나 이끌려고 하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촛불시위의 중심은 참가자 각자였다. 전체 대열을 이끌고 가는 지도부도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시위 참가자들 각자가 판단해 움직였고 필요하면 즉석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참가자들이 한 곳에 모여 집회를 할 때도 연사의 준비된 정치 연설이 아닌 참가자들의 자유 발언이 줄을 이었다.

 

청년들은 촛불시위를 함께 어울려 춤추고 노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들에게 투쟁과 놀이는 처음부터 하나였다. 청년들은 이전 시기 집회와 시위를 지배했던 비장함과 강인함을 부드러움과 여유로움으로 대체했고, 물리적 힘을 문화 예술적 상상력과 재기발랄함으로 대체했다.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폭소와 박수가 터져 나오도록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훨씬 더 강력한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전통에 충실한 노동계의 집회 시위와 비교해 보면 2008년 촛불시위의 특성이 비교적 명료하게 드러난다. 노동계 집회는 소속 노조 여부에 따라 참가자의 경계선이 뚜렷했다. 지도부와 조합원 사이에는 수직적 위계질서가 형성되어 있었다. 참가자들은 주최 측 안내에 따라 통일적으로 움직였다.

 

반면 2008년 촛불집회는 경계선이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완전한 개방형 집회였다. 촛불만 들면 누구나 시위대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어떤 위계질서도 허용하지 않았다. 참가자들의 관계는 철저하게 수평적이었다. 국회의원이든 중학생이든 모두 촛불의 한 명으로 간주되었다. 각자의 행위는 각자가 기획해서 연출했다. 다양성이 존중되고 극대화된 시위였다. 이는 곧 2008년 촛불시위가 지도부와 대중, 주체와 객체의 분리를 넘어섰음을 말해준다. 시위대 모두가 기획의 주체였고 자신을 이끈 지도부였던 것이다.

 

개방성, 수평성, 다양성은 촛불시위를 주도한 청년들의 평소 속성이 나타난 것이었다. 청년들은 이러한 속성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발산했다. 그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터득한 특유의 확장성을 바탕으로 거대한 시위 대열을 형성했다. 왕성한 온라인 활동을 결부시킴으로써 우세한 여론전을 통해 이명박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결국 이명박 스스로 졸속 추진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함과 동시에 재협상을 통해 30개월 미만 쇠고기만을 수입하는 조치를 취해야 했다.

 

2008년 촛불시위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시설이 있다. 촛불시위를 주도한 청년들은 어떤 위계질서도 용납하지 않고 철저한 수평적 관계를 추구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구별 없이 모두가 동격이었다. 주체와 대상의 구별도 없었다. 과연 이 같은 수평적 관계에서 엘리트주의가 자리 잡을 여지가 있을까?

 

2008년 촛불시위는 당사자들이 의식을 못했을지라도 엘리트주의에 대한 강한 반발이 표출된 사건이었다. 가르치려 드는 자세에 강하게 반발한 것도 엘리트주의에 대한 거부 의사였을 수 있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대체로 개인의식을 뛰어넘는 집단 무의식을 바탕으로 일어난다. 집단 무의식 속에는 집단이 겪은 역사적 경험이 아로새겨져 있다. 촛불시위를 주도한 청년들의 집단 무의식 속에는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한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이 틀림없다. 그 속에는 엘리트주의에 대한 기억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2008년 촛불시위는 그러한 집단 무의식의 표출이었다.

 

집단 무의식에 기초한 역사적 사건들은 당사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새로운 미래를 예고할 가능성이 크다. 2008년 촛불시위는 청년들이 중심이 된 새로운 시민 주체의 등장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동시에 한층 거대하고 파괴력 있는 촛불시민혁명이 일어날 것을 예고했다. 하지만 기존 시민사회운동 활동가들 대부분은 그러한 의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민사회운동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2008년 촛불시위를 주도한 청년들을 애 취급하며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야말로 우습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식민지 치하에서의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선도한 주체들 대부분이 10~20대 청년들이었음을 까마득히 잊고 있다. 과거 민초들은 나라의 운명을 책임질 주체인 청년들을 아끼고 존중하고 격려해주었다.

 

시민사회운동 활동가들 사이에는 2008년 촛불시위가 자신들이 주도해서 만든 판이 아니라는 이유로 애써 그 의미를 폄하하는 태도가 있었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을 바꾼 모든 사건은 결국 시민의 자발적 진출로부터 야기되었다. 시민사회운동 활동가들은 시민의 자발적 진출을 누구보다도 반겨야 한다. 그렇지 않고 시민이 자신들의 지침에 따라 움직이기만을 원한다면 스스로 엘리트주의에 오염되었음을 입증한 것에 다름 아니다.

 

청년들이 기존 문화에 정면 도전한 점을 두고 매우 불편한 반응을 보인 시민사회운동 활동가들도 많았다. 청년들은 패쇄적 조직문화에 익숙하고 위계질서를 중시하며, 획일적이기까지 한 기존 시민들의 태도를 거부했다. 청년들의 반응은 시민사회운동의 낡은 타성을 극복하기에 둘도 없이 좋은 계기였다. 하지만 그들은 청년들이 자신들을 꼰대 취급한다며 분노했을 뿐이다.

 

2008년 촛불시위는 시민주의 실종 상황에서 벗어나 극적인 반전 국면을 열 수 있는 계기였다. 하지만 이렇다 할 반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기존 시민들은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8년 촛불시위 이전과 이후 모습에서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반면 촛불시위를 주도한 청년들은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갈 정도로 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촛불시위가 마감되자 일상 세계로 되돌아갔다.

 

  • 도배방지 이미지

청년아카데미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