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아카데미 18] 보수의 재기가 어려운 이유 1: `자본의 덫`

보다 자율적인 수준에서 경제활동을 보편적 이익에 맞게 규제할 수 있어야 하며 '사람 중심 경제’로 전환한다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

손종표 기자 | 기사입력 2020/10/04 [16:21]

[청년아카데미 18] 보수의 재기가 어려운 이유 1: `자본의 덫`

보다 자율적인 수준에서 경제활동을 보편적 이익에 맞게 규제할 수 있어야 하며 '사람 중심 경제’로 전환한다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

손종표 기자 | 입력 : 2020/10/04 [16:21]

[청년아카데미 18] 보수의 재기가 어려운 이유 1: '자본의 덫'

보다 자율적인 수준에서 경제활동을 보편적 이익에 맞게 규제할 수 있어야 하며 '사람 중심 경제’로 전환한다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언론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온 보수 성향 전문가들의 경제 처방에는 일치되는 지점이 하나 있다. 바로 '규제 완화’ 이다. 흔히 노동유연화를 보태기도 하는데 이 역시 노동시장과 관련된 규제 완화의 일부이다. 물론 사람마다 편차는 있다. 매우 일반적인 수준에서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대 상황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 타파를 말하며 제한적 접근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차이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기 때문에 충분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보수적 시각에서 모든 경제활동의 출발점은 이윤 획득을 목적으로 한 자본 투자이다.
투자가 활성화되어야 일자리도 생기고 소득이 발생해 소비 시장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과거 산업화 시절에는 자본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이다. 자본은 넘쳐나는데 투자할 기회가 부족해서 문제이다. 투자 기회가 부족한 이유는 또 무엇인가? 보수 측 전문가들은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처방 또한 단순명료하다.
규제만 풀면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자본이 몰려들어 투자가 완성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린다.

확실히 단순명료해서 좋다. 초등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게 매력이라면 매력일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왜 규제를 풀 생각은 하지 않고 엉뚱한 것에 매달려 사서 고생하는 것일까?

규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부터 살펴보자. 규제는 국회에서 법률로 정하거나 정부가 시행령으로 만들어 공표한다. 모두 국민 동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국민 동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곧 국민 이익에 부합되었다는 이야기다. 누군가 투자자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일부러 규제를 만들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규제는 저마다 만들어진 배경이 있고 나름대로의 탄생 이유가 있다. 박근혜가 재임 기간 중 규제의 대못을 뽑자고 그토록 난리를 쳤음에도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던 이유일 수 있다.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한편에서 보면 규제를 풀어야 하는데 규제가 만들어진 데는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다니. 도리 없이 규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규제의 역사를 되돌아봐야 한다.

유럽과 북미 지역을 무대로 1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시장이 모든 영역을 집어삼키듯이 확대되었다. 시장 확대와 함께 거래되는 상품의 수도 끊임없이 증가했다. 인간이 만든 물건만이 아니라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온갖 것들이 상품으로 거래되었다.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마약과 무기 등도 아무런 제재 없이 거래되었다. 사회 질서가 만들어낸 것 역시 상품화되었다. 자격증, 관직, 선거권과 피선거권마저도 돈을 주고 거래하는 상품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심지어 사람 자체도 사고팔았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은광과 금광, 사탕수수, 담배, 면화 농장 들을 개발하면서 노예를 적극 활용했다. 16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1,000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들이 백인 사냥꾼들에게 생포되어 노예로 팔려나갔다. 그 과정에서만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노예들의 노동 환경은 끔찍하기 그지없었으며 대부분 오래 살지 못하고 비참한 삶을 마감했다. 노예무역은 다른 상품들의 무역과 똑같이 취급되었다. 심지어 노예무역 회사들은 주식까지 발생했다. 다른 회사의 주식과 똑같이 거래된 이들의 주식은 중산층 이상의 유럽인들이 선호하는 투자 대상 중 하나였다.

인간을 노예로 사고팔 정도였으니 노동력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데는 더욱 거리낌이 있을 수 없었다. 1차 산업혁명의 발흥지인 영국에서는 아동 고용이 일반적으로 이루어졌다. 수많은 9세 이하 아동들이 공장에서 힘든 노동을 감내해야 했다. 노동시간은 많게는 하루 16시간에 달했다.

1차 산업혁명 시기 자유방임자본주의 시장은 야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규제의 역사는 바로 그 야만성을 완화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규제 도입 시도는 격렬한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1830년 영국 정부가 아동보호법을 제정하여 9세 이하 아동 고용을 금지하고 14세 이하 아동 노동을 하루 8시간으로 제한하려 하자 고용주들은 자유의사에 따른 거래를 막으려 한다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상품 목록에서 노예를 제거하기 위해 노예 예방을 추진했던 미국 정부의 시도는 남북전쟁까지 일으켰다. 규제의 역사는 반발을 극복하며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간 힘겨운 투쟁의 역사였다.

규제는 상품으로 간주되던 많은 것들을 시장에서 퇴장시켰다. 사람을 사고파는 인신매매, 표를 돈으로 사는 매수 행위, 관직을 사고파는 매관매직 모두가 불법화되었다. 마약과 신체 장기 등 상품 거래 금지 목록이 갈수록 늘어났다. 건강에 유해한 식품이나 제품 등도 금지 목록에 추가되었다.

규제는 생산 과정에도 작용했다. 과거 공장 매연과 오폐수 방출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도리어 공장의 시커먼 연기는 산업화의 상징으로 찬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오염 배출은 엄격한 규제 대상이다. 규제는 시장 경쟁 질서에도 개입했다. 가령 독과점은 엄격한 규제의 대상이다.

이렇듯 인간 사회는 규제를 통해 보다 정의롭고 공정하고 인간적인 시장을 만들어왔다. 시장의 진화는 곧 규제 강화의 역사였다. 규제 포기는 곧 야만으로의 복귀였다. 어느 모로 보나 일반적인 의미에서 규제 완화는 답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는 없는 발상이다.
단적으로 총기 규제를 풀면 총기 관련 산업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지만 결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아니다.

이제 규제가 등장한 배경과 그 의미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그래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일반적 규제 완화가 답이 아니듯이 무조건적인 규제 강화가 최선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누구도 오염 배출이나 유해 식품 판매 등을 자유화하자는 주장에 손을 들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보수 측 전문가들은 꼭 필요하고 이익이 분명하다 여기는 곳을 선별하여 규제 완화를 제기한다. 그렇다면 보수 매체들이 규제 완화 필요성을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사례를 들어 보자.

보수 매체에 따르면, 한국 의료 기관들은 뛰어난 첨단 기술과 콘텐츠를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영리 의료법인 금지 규제로 의료산업 발전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첨단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개발하고도 규제로 인해 국내 투자를 받지 못했다. 개인정보보호법 규제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빅데이터 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 사례들은 규제 완화 필요성에 대한 동의를 비교적 쉽게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규제를 완화해야 하는 지점이 존재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세히 파고들며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 보면 규제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할지 한층 분명해진다.

의료 기관을 교육 기관과 함께 비영리 법인으로 지정한 것은 박정희 정부 때 일이다. 교육과 의료 기관만큼은 이윤 증식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였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그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폭넓게 형성되어 왔다. 이를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의료산업을 제대로 발전시키자면 한국 경제 패러다임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경제활동의 동기와 목적 등이 근본적으로 재정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보다 자율적인 수준에서 경제활동을 보편적 이익에 맞게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 다루게 될 '사람 중심 경제’로 전환한다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이 돈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환경에서 영리 의료법인을 허용한다면 자칫 사람의 생명이 철저히 돈벌이 수단으로 전략하게 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빅데이터 산업에 대해 살펴보자. 빅데이터 산업 발전은 필수 과제이고 그에 맞게 관련 규제를 개선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그러한 개선이 반드시 󰡐규제 완화’만을 의미하지 않다는 데 있다. 도리어 정반대일 수도 있다.

캐시 오닐 Cathy O’ Neil의 《대량살상 수학무기Weapons of Math Destruction》는 미국의 빅데이터 기술들이 어떻게 차별을 확대‧심화시키는 데 이용되고 있는지를 폭로한다. 간단한 예로 경찰이 사용하는 빅데이터 기반 알고리즘 프로그램은 유색 인종을 재범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고 우선적 감시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 결과 유색 인종이 더 많은 불신검문 대상이 되면서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나타난다. 빅데이터가 이런 식으로 악용되지 않게 하려면 보다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

빅데이터 산업이 발전하려면 건강과 취향, 일상생활 패턴 등의 개인 정보 취합이 불가피하다. 경우에 따라 대학병원이나 건강보험 공단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의료 정보가 빅데이터 재료가 될 수 있다. 그러자면 빅데이터가 철저히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엄격한 전제가 확립되어야 한다. 이는 매우 높은 수준의 규제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 정보 취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어려울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새로운 시대에 환경의 변화에 맞게 규제를 개선하는 지속적 노력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그 중에는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포함 될 수도 있다. 그와 달리 기존 규제 조항을 고치는 방식이 있을 수도 있고, 규제를 더욱 강화하거나 새로운 규제를 도입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규제 문제는 철저하게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접근해야지,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 해법은 없다. 단지 좋은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원칙만이 있을 뿐이다.

규제를 둘러싼 선택지는 다양하다. 이를 무시한 채 규제 완화에만 집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역사적 사례들은 급격하고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얼마나 끔찍한 참극을 초래했는지 거듭 보여준다.

김영삼 정부는 금융에 대한 정부 규제를 대폭 완화 혹은 폐지했다. 재벌들이 금융기관을 지배할 수 있도록 했고, 해외 금융 차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는 엄청난 수준에서의 과잉중복 투자로 나타났고, 모두에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외환위기로 이어지고 말았다. 어느 누구도 부인 못하는 진실이다. 미국은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면서 금융자본에 가해졌던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 혹은 철폐했다. 규제에서 벗어난 금융자본은 온갖 파생금융상품을 만들면서 금융 생태계를 위협했고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폭발시켰다. 이 역시 어느 누구도 부인 못하는 진실이다.

역사적 경험은 과잉중복 투자나 파멸을 초래할 사행성 투자를 억제시키는 데 규제가 필수적임을 말해준다. 좋은 규제는 투자 건강성을 증진시킴으로써 경제 활성화 효과를 이끌어낸다. 규제가 반드시 투자의 적은 아니다.

'규제 개선’이라는 표현은 이 모든 것들을 함축할 수 있다. 어떤 경우든지 규제를 좋은 방향으로 고쳐가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규제 개선은 규제에 대해 매우 원칙적이면서도 유연한 대응을 가능하게 해준다. 규제 개선의 입장에서 보자면 규제 문제는 굳이 골치 아픈 논쟁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단순명료하다.

그런데도 보수 측 전문가들은 애써 '규제 완화’라는 표현을 고집한다. 밑도 끝도 없이 규제 완화가 일반적 해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똑같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여기에는 종종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분명한 의도가 담겨 있다. '규제 완화’가 핵심적으로 노리는 것은 '노동유연화’로 표현되는 '노동시장 규제 완화’이다(일각에서는 '규제 개혁’, '노동 개혁’ 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맥락은 규제완화, 노동유연화와 동일하다).

규제 완화라는 표현을 고수하면 노동시장 규제 완화(노동유연화)로 의 논리적 연결이 한층 자연스러워진다. 규제 개선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해 보자. 󰡐노동시장 규제 개선’은 보수가 의도한 것과 전혀 다른 이미지를 풍긴다.

특정 언어 사용을 반복하면 자신도 모르게 일정한 결론에 이르고 자연스럽게 동의하게 된다. 익숙한 예를 들자면, ‘세금 폭탄’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다 보면 증세에 대해 자연스럽게 반대 입장을 취한다. 보수 측 전문가들은 이러한 ‘언어 정치’에 매우 능하다. 규제 완화도 그러한 맥락에서 사용되는 언어 도구이다.

보수 측 전문가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노동유연화는 앞으로 풀어야 할 미완의 과제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노동유연화는 결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노동유연화는 급격히 강화되었다. 정리해고가 빈번해지고 임시직 · 계약직 · 파견직 등 고용 형태 유연화의 결과로 비정규직이 급증했다. 그로부터 20여 년 이상이 흘렀다. 노동유연화 결과를 검증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다.

노동유연화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급변하는 시장에 대처하기 위해서 노동유연화는 상당 정도 불가피하다. 과거 산업화 시기의 경직된 노동 체계로서는 살아남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유연화는 무조건적인 반대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격한 전제가 있다. 노동유연화가 노동자 생존권을 위협하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기업은 이를 위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다른 한편 노동유연화는 노동 비용 감소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한국이 바로 그러했다. 결과는 불평등 심화였다. 경제적 격차는 근로소득자와 자본소득자 사이는 물론 노동자 내부에서조차 심각하게 벌어졌다.

일부 보수 측 전문가들은 불평등 심화가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치의 부산물이라고 변명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또한 맞지 않는 이야기다. 노동유연화 강화하는 장기적으로 볼 때 보수 측 전문가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보다는 도리어 약화시켰다. 비정규직을 남발했지만 한국 기업들의 기초 체력은 꾸준히 약화되었다. 오늘날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 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것은 경험적으로 확인 가능한 사실이다.

보수 측 전문가들이 여전히 ‘노동유연화 강화’를 일반적 처방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지난 20년간의 검증된 결과를 무시한 것이다. 극단적으로 비정규직을 더욱 늘리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에 다름아니다. 정말 그간의 경험치를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보수 측 전문가들이 명백히 검증된 결과까지 무시하면서 노동유연화를 고집하는 것에는 매우 중요한 진실이 숨어 있다. 오늘날 기업은 자본 소유자로서 주주 이해를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주주가 의결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기업 주주 구성에서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급격히 커졌다. 주가 동향도 그로부터 큰 영향을 받기에 이르렀다. 토착 주주들과 기업 모두 외국인 투자자 요구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 기업이 국제금융자본 움직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국제금융자본은 빠른 이동성을 바탕으로 단기 이익에 집착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단기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노동유연화를 통해 노동 비용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국제금융자본으로부터 가해지는 노동 비용 감소 압력은 암암리에 보수 세계를 지배해 왔다. 보수 측 전문가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과거 산업자본이 지배할 시기의 자본 투자는 고용과 소비 확대로 이어지며 국민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 그 시절에는 자본 투자로부터 시작되는 보수의 경제 논리가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어쩌면 그 시절 형성된 관성이 지금도 보수의 사고를 상당 정도 지배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문제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는 데 있다. 요즘은 공격적인 노동 비용 감소가 중시됨에 따라 자본 투자가 고용과 소비 확대를 통한 국민경제 활성화로 잘 이어지지 않고 있다. 투자를 확대하면 할수록 자동화가 더욱 진척되면서 거꾸로 고용이 줄어드는 현상마저 확산되고 있다. 이는 자본 투자를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 한 국민경제 향상과 관련한 보수의 문제해결 능력이 갈수록 빈곤해질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보수 세계가 이른바 ‘자본의 덫’에 걸려든 것이다.

우리는 경제 분야에서 보수가 축적한 경험이나 노하우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현재 보여주는 것처럼 ‘규제 완화 프레임’안에 갇혀 있는 한 결코 그 눙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보수 매체들은 앞다투어 ‘규제 완화-투자 활성화-경제 회생’을 절대법칙으로 받드는 집단 최면 상태를 유도하고 있다. 그 출발점은 자본의 힘에 대한 무한한 신뢰이다. 규제 완화가 필요한 지점이 있을 수 있지만 결코 일반적 해법이 될 수 없다.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서 노동유연화 강화는 그간의 경험을 무시한 억지일 뿐이다. 자본 투자가 활성화된다고 해도 국민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는 확고한 보장이 없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규제 완화를 통한 투자 활성화’를 외치는 것 외에 새로운 상상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야말로 보수의 한계를 보여주는 본질적 지점일 수 있다.

자본에 결박될수록 국민경제 이해에서 멀어져 간다. 이는 매우 심각하면서도 근원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앞으로 계속해서 파고들 주제이다. 그런 만큼 여기서는 이 정도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에 그치고자 한다. 풀리지 않는 수많은 의문 부호들이 남아 있겠지만 차근차근 해소해 보도록 하자.
  • 도배방지 이미지

청년아카데미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