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운동의 중추로써 남·북합작과 좌·우합작운동

남도, 북도 없었다.

손종표 기자 | 기사입력 2020/10/02 [16:05]

조국통일운동의 중추로써 남·북합작과 좌·우합작운동

남도, 북도 없었다.

손종표 기자 | 입력 : 2020/10/02 [16:05]

조국통일운동의 중추로써 남·북합작과 좌·우합작운동

남도, 북도 없었다.


45년 9월 점령군으로 주한미군이 인천항을 통해 주둔하면서 남도 생기고 북도 생겼으며 좌도 외세에 의해 우도 외세의 식민지 분할통치를 위해 존재 했어야 하고 기능했어야 했다.

항일애국투사들은 하나같이 남·북합작 좌·우합작을 이룩하기 위한 과업에 열심이었고 매진하였다.

독립운동의 중추적이고도 핵심적 문제가 오직 통일단결만을 위한 대원칙이다.

외세에 의해 조작되고 분열된 분란을 반대 배격하고 전체운동의 그 지점의 결정적 정형은 의리적으로 조직적으로 가족적으로 하나였던 제헌의회 괴산군의원 연병호 선생과의 40~50년대 의정활동을 살펴보아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 연병호 선생 서대문 형무소 수형카드     ©

 

 

 

연병호 선생은 독립운동의 첫발부터 철저히 비밀결사 운동으로 출발한다.

대한독립청년외교단이 그랬고 뒤이은 배달청년당이 반일 애국부인회의 비밀활동으로 조소앙선생 등의 헌신과 활동으로 뒷받침된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와 혈성단애국부인회 대한민국애국부인회 등에도 중추적 역할이 이어진다.

특히, 1910년 망명 직후 북간도에서 부하 40명을 거느린 정예 별동대 항일무장대 대장으로 산포대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1937년 1월 9일자 매일신보의 선생의 체포보도가 실려 있다. 14여 년의 잠행활동 기사가 보이며 일제로부터 장기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 연장 속의 조카사위 엄항섭의 퉁일애국투쟁이 더욱 빛나고 있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연병호 선생     ©

 

충북 출생 연병호 선생의 불꽃같은 한 생의 중심에는 통일애국의 뜨거운 선혈이 조국의 대지 속으로 깊게 스며 있음을 확인한다.

그 연장 속의 조카사위 엄항섭의 퉁일애국투쟁이 더욱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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